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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ㆍ탐방ㆍ칼럼
[인터뷰] 꿈대로 산다(3) 음악교육가 최철군 "나의 꿈이자 가족의 꿈이었다"
기사 작성일 : 18-02-08 15:36 조회 : 2103  


[인터뷰] 꿈대로 산다(3)


음악교육가 최철군 "나의 꿈이자 가족의 꿈이었다"
선천성심장병어린이에서 음악교육가로 성장하기까지
청도 소바흐예술학교 성공 운영 중


△ 청도 도심속 한 뮤직프로덕션에서 만난 음악인 최철군 씨


겉모습은 딱 연변가무단 무용배우 스타일인데 늘 현지인들 속에 파뭍혀 있는 한 신비의 인물. 주목하던 차에 여차여차해서 그가 조선족임을 알게 되고 드디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피아노학원 운영자, 피아노조율사로 현지인들한테 각인된 인물, 과연 그의 정체는 이것 뿐일가?


최철군(崔哲军) 프로필

◆ 78년생, 고향 길림성 매하구
◆ 동북사범대학 음악학원 성악 전공
◆ 동북사범대학 디지털음악제작 학사 학위 취득
◆ 2002년 일본 유학
    도쿄학예대학 (东京学艺大学) 작곡 전공
    무사시노음악대학원 (武藏野音乐大学院) 성악 전공
    오페라성악연구 및 우수 논문 발표 및 석사학위 취득
◆ ミネショウザン(峰章山) 뮤직프로덕션 근무, 迷笛작품, 일본サンワ사 사가(社歌) 등 제작에 참여
◆ 구로다music theatre (黑田音乐剧场)무대 감독
◆ 귀국 후 2011년 청도 동방성쇼핑몰에서 피아노학원 운영
◆ 2013년 소바흐예술학교 정식 설립, 현재 학원생 300명 이상
    청도시문화부 음악급수시험 지정업체, 청도시문화부 서예급수시험 지정업체, 전국예술특장생소질교육위원회 급수시험 업체, 전국예술교육 연맹이사 업체, 2017년 청도시 문화부 우수교육 업체 지정
◆ 현 일본 ミネショウザン(峰章山) 뮤직프로덕션 고문 및 심사위원, 전국예술특장생소질평가위원회 심사위원, 청도시문화부 급수시헙 심사위원, 중국음악가협회 회원, 중국청도예술교육연맹 이사, 소바흐예술학교 교장



△ 음악교육가 최철군 씨


◆ 오래전부터 궁금했는데 프로필을 보니 어마무시하네요. 이런 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 감사합니다. 평범한 저를 인터뷰 해 주신다니 반갑고 황송하여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궁금한 건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오.


◆ 그동안 쭉 현지화를 견지해 오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피아노학원 운영에서 정규적 예술학교를 설립하시고, 또 선생님 본인의 예술에 대한 조예도 상당해 보이시던데 한 사람의 현재는 거슬러 올라가보면 꼭 어린시절과 연관돼 있더라구요. 어린 시절 진로선택 과정부터가 궁금합니다. 

- 우선 저의 어머니에 대해 얘기하고 싶네요. 전 어렸을 때 선천성심장병 수술을 한 적 있어요. 제가 78년 생이니 그 시절에 이런 수술은 많지 않았기에 큰 일에 속했어요. 아마도 이런 아들이 안쓰러우셨던지 어머니는 끔찍이도 저를 위하셨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흔쾌히 접수할 수 있었던것도 저의 어머니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 최철군 씨의 부모님과 여동생


◆ 네 역시 성공한 자녀 뒤에선 훌륭한 부모님이 서 계시는 것 같네요.

- 네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다 훌륭하지만 저의 어머니는 특히 대단하신 분입니다. 어려서부터 소학교 초중 고중 지어 대학까지 어머니는 저를 한시도 떨어지신 적 없습니다. 고중은 외지에서 다니고 대학은 장춘에서 다녔는데 제가 어디로 가면 어디로 따라오셔서 셋집 잡고 항상 본인 손으로 직접 밥을 해주시고 뒷바라지를 해주셨어요. 아마도 아들이 몸이 약하다고 생각되셔서 더욱 극진하셨던것 같습니다.


◆ 대학 다닐 때까지도 직접 밥을 해주셨다니 이건 확실히 보기 드문 일이네요.

- 네 기숙사 생활을 반대하셨어요. 밖의 밥을 못 먹게 했어요, 몸에 나쁘다고. 꼭 엄마가 집에서 직접 해 준 밥을 먹어야 한다면서. 하여 다른 집 엄마들은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모임도 가고 했는데 저의 어머니만은 자신의 생활이 없으셨던거 같아요. 항상 자식이 먼저고 오직 자식 뒷바라지 밖에 모르셨어요.

지금에 와서 저도 부모가 돼 보니 알겠지만 그때 당시 어머니 자신의 인생도 얼마나 소중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을 다 우리에게 바쳤죠.  그때 저희들이 어머니를 좀 더 이해해 드리고 좀 더 기쁜 추억을 많이 만들어 드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예술 쪽으로 진로를 잡은 건 언제부터였나요? 어렸을 때 예술과외같은걸 했나요? 아니면 유전적인가요?

- 유전적인 면이 있어요. 저의 아버지가 무슨 악기든 다 다룰줄 아세요. 어머니는 노래를 잘하십니다. 전문 프로는 아니구요.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셨는데 그냥 취미로 두분 다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음악 과외는 초중때부터 시작했어요. 중2가 되니 공부 성적이 별로였어요. (웃음) 하여 가족들이 같이 토론하고 음악쪽으로 진로를 잡기로 결정지었어요. 고중 때는 음악반을 다녔어요.



△ 음악교육가 최철군 씨


◆ 그 시절에 예술을 한다는건 보통 가정으로서는 참 벅찬 일이었을텐데요. 부모님들이 아들 출세시키느라 고생 많이 하셨을거 같아요.

- 어머니 노력이 대단했어요. 고생은 눈물 날 정도로 했지요. 동북사범대학이 그때 전국 2등 학교였어요. 예술시험에 합격해야 입학시험자격을 줬지요.

매하구에 살다보니 장춘에 대해 잘 모르고,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만 있으면 온 세상 정보를 다 아는 시대도 아니고, 전부 다 발품 팔아 지인들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정보를 모으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연락하여 어떤 지도교사를 찾아 어떤 과정을 밟고 예술학교 진학을 하는지 알아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저의 어머니는 참으로 의지가 강한 분이십니다. 끝까지 포기 안 하고 자식 둘 다 예술쪽으로 성공시키신거에요.


◆ 사춘기 때 보통 부모한테 반항하는데 음악공부를 거부한 적은 없나요?

- 없어요.  어머니는 성격도 자상하여 자식들한테 큰소리도 안 치셨어요. 자식들의 희로애락을 늘 함께 하셨어요. 같이 웃고 같이 울었어요.

자식들때문에 그렇게 애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커서 꼭 성공하겠다, 출세해서 어머니 소원을 풀어드리겠다고 결심했어요. 어머니의 꿈을 저한테 강요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의 꿈이자 어머니의 꿈이고 우리는 같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가족 모두의 꿈이 같아요.



△ 일본 유학시절 최철군 씨가 여동생과 함께  무사시노음악대학원 (武藏野音乐大学院) 교문 앞에서


◆ 형제자매는 있나요?

- 제 아래로 여동생 하나 있는데 저희 남매 또한 보통 인연이 아니에요. 제가 어렸을 때 선천성심장병 수술을 하느라 1년 휴학하다보니 한살 아래인 여동생과 같은 반을 다니게 됐는데 하다보니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늘 같은 반을 다녔어요. 같은 대학 같은 전공 같은 반이었어요. 후에 일본 유학도 똑같이 같은 학교를 지원해서 같은 전공 같은 학위를 탔어요.

여동생은 성격이 아버지를 닮아 아주 시원시원하고 담량도 커요. 그리고 소학교때부터 공부를 잘 했고 춤도 잘 추었지요. 오빠가 동생을 챙기는게 순리인데 저희 남매는 거꾸로 동생이 오빠를 많이 챙겼어요, 어려서부터.  제가 동생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자랐어요. (웃음) 이런 동생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 몇년도 아니고 소학교부터 일본유학까지... 아주 보기 드문 경우네요. 어머님은 고생도 두배로 하시고 보람도 두배였을거 같네요.

- 네 지금 저의 어머니는 매우 보람을 느끼십니다. 아들딸 다 출세했다고 동네분들이 다 부러워하면 너무 좋아하십니다.


◆ 자녀 둘 다 동시에 일본 유학 보낼려면 자금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생활형편은 괜찮았나 봅니다.

- 아버지가 한국에 가서 돈 벌어서 자식들 공부 시켰어요. 엄마는 옆에 딱 붙어서 뒷바라지를 하셨구요. 두분께 너무 감사합니다. 두분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날 저의 두 남매가 꿈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음악교육가 최철군 씨


◆ 일본 유학생활은 어땠나요? 배운게 많나요?

- 처음에는 물론 다 그렇듯 고달팠지만 배운건 진짜 많습니다. 우선 전공면에서 일본은 성악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중국보다 최소 20년 이상 앞선거 같아요. 국내에 있을 땐 목소리 높게만 올라가면 잘 한다고 평판받았어요. 대학에서도 그랬구요.

일본은 달랐습니다. 우선 이 작품을 누가 왜 썼는지 시대배경부터 가르치고 학생이 작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도록 인도한 다음 개개인 음색에 따라 가장 알맞는 창법을 가르쳐 줍니다. 즉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는게 일본 성악선생님들의 가장 중요한 일이였습니다. 

스승처럼 부르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쳐요. 자기만의 개성적인 창법으로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하라, 스승을 초월하라고 가르치죠. 그러니 일본은 성악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그리고 많이 배운 부분은 사람을 대함에 있어 존중의 자세였습니다. 처음에 알바를 하는데 컵 닦을 줄 몰라 아무리 닦아도 얼룩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매니저가 혼내기는 커녕 아주 상냥하게 차근 차근 잘 닦는 법을 깨우치도록 인도해 주더군요. 직접 이렇게 닦아라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았어요. 제가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잘 유도했어요.

또한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 개성에 대한 존중 이런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서 사는 게 참 마음 편했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 없기에 옷도 각 자 개성대로 입으니 사람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좋았구요.

중국을 보면 남의 눈을 의식하기에 옷도 거의 비슷하게 다들 같은 걸로 입으려고 하고 학교 교육도 그렇고 성악도 그렇구요. 표준을 하나 정해놓고 다들 거기에 맞추다 보니 누구나 똑같은 겁니다. 이런 부분이 젤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일본에 가서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깨우치고 왔습니다.

물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사람 간 온도가 낮아요. 대인관계가 차갑죠. 대인관계는 아직까지 중국이 많이 따듯해요.


◆ 알바는 많이 고달팠나요?

- 고달팠어요. 하지만 열심히 할려고 노력했어요. 사발 씻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사발도 최고로 잘 씻으려고 노력해서 나중에 진짜로 최고로 잘 씻었어요. 어머니한테서 뭐든 할려면 최고로 잘 해야 한다는 것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언어도 그래요. 어눌한 말투때문에 어쩔수 없이 외국인 알바생들이 차별받기도 하는데 저는 그래서 더욱 열심히 언어공부를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는 국내 아이들과 같은 수준으로 요구하지 않지만 전 일본 본토배기 아이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자신한테 요구했습니다.

졸업할 땐 동생도 저도 논문답변에서 모두 최고점을 맞았어요.



△ 일본 유학 시절 사진들 


◆ 유학공부를 끝마치고 바로 귀국했나요?

- 일본에서 석사를 마치고,  ◆ ミネショウザン(峰章山) 이라는 뮤직프로덕션에서 큰 뮤직홀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세계적인 음악대가들의 공연을 체험했습니다. 오페라극장 무대 설계, 조명, 음향, 기획, 진행, 마무리 이벤트 등 여러가지 일을 다 경험해 보았어요. 디지털음악제작에 참여하였는데 지금도 예술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계속 그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귀국은 언제 하셨나요?

- 2011년 일본 쓰나미 때 귀국했습니다. 사실 쓰나미 때 일본 다른 지역은 멀쩡했는데 국내에서 더 난리났죠. 저도 그때 귀국 계획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하도 들어오라고 난리를 치셔서 하는 수 없이 들어오게 됐어요. (웃음) 들어온 담에는 죽어도 더이상 일본은 안 된다 해서 눌러 앉았죠.



△ 소바흐예술학교와 학생들이 공연하는 모습


◆ 학원은 언제부터 차리셨나요?

- 그때 귀국해서 청도로 와서 동방성 근처에 수청목화라는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려니 답답해서 집에서 애들한테 음악을 가르쳤어요.

반응이 좋아 생각보다 학생들이 많이 늘어나서 집은 더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동방성에다 음악학원을 하나 정식 차렸어요. 학생들이 자꾸 늘어나서 나중엔 학원을 4개까지 늘렸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학원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지더라구요. 그냥 피아노나 팔고 학원생들이나 받아서 돈이나 버는데 그치고 싶이 않았어요.

뭔가 진정으로 예술사업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보람있는 인생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담하게 정규적 예술학교를 차릴 구상을 하고 추진했어요.

학교 차리는 일은 원래 쉽지가 않아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특히 저는 외지 호구인데다 조선족이라는 특수한 신분이기도 했고요. 정부 허가를 받는 다는게 거짓말 보태서 하늘의 별따기였어요.


◆ 그래도 해 내셨네요?

- 허가 받는 과정이 파란만장하여 얘기할려면 끝이 없어요. 재미도 없고요. 그 과정은 생략할렵니다. (웃음)

하여튼 여차여차해서 2013년에 정식으로 예술학교라는걸 설립하고 이름을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 이름을 따다가 소바흐(小巴赫艺术学校)라고 명명했어요.

소바흐예술학교는 국가 교육부에서 관리하는 민반학교에요. 수청목화(水清木华) 뒤 화서미방(华胥美邦)에 위치하고 있는데 소원대로 예술사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 윗사진/여가 시간에 연주를 즐기고 있는 최철군 씨, 아래사진/공간의 한 코너에는 친근감을 주는 바가 따듯이 미소 짓고 있다.


◆ 지금 이 곳은 시내에 차린다는 예술학교인가요?

- 여긴 예술학교가 아니고 어른들을 상대로 한 음악회관으로 만들고 있어요. 아직 정식 개업은 안 했고요. 기능은 뮤직프로덕션이 위주가 될 겁니다.


◆ 첨에 딱 봤을 때 국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인테리어 스타일이었는데 혹시 일본 문화를 닮은 거라고 봐도 되나요?

- 네 좀 닮은 데가 있어요. 하지만 다는 아니에요. 저 개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위주에요.

일본엔 곳곳에 클럽이 많아요. 술 마시는 클럽이 제일 많죠.

제가 원하는 공간은 술이 아니라 음악공간이에요. 같은 취미를 가진 어른들이 하루 피곤을 풀 겸 노래도 하고 악기도 하면서 같이 즐기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 점에서 일본의 것과는 좀 다르다고 봐야겠죠.

중국도 주변을 보면 생활수준이 제고됨에 따라 정신적인 문화를 추구하려는 계층이 점차 늘고 있어요. 하지만 퀄리티나 격조면에서 이 계층의 요구에 만족을 주는 장소가 거의 전무해요 청도는. 

하여 이런 분들을 상대로 뭔가 하나 차려놔야 겠다 생각했어요. 인생은 사업과 돈만이 있는게 아니죠. 결국 질이죠. 우선 사는 재미가 있어야 질적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재미가 없으면 그저 지치고 피곤한 삶일 뿐이죠.  재미있게 격조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장소가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재미있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네요.



△ 휴식하기 좋은 코너, 친한 벗과 술 한잔 기울이고 싶어 지는 공간


◆ 성양구 조선족 집거구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시내 한복판을 선택한 이유는요?

- 여기가 앞으로는 신도심이 될것이고 주변에 완커같은 고급건물이 많아요. 그만큼 격조있는 문화를 추구하는 인텔리들이 많이 잠재해 있다는 반증이죠. 저의 주 고객층을 확보하기에 비교적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했어요.


◆ 처음부터 쭉 현지화 길을 걸어오셨는데 앞으로도 현지화 위주인가요?

- 네,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가 현지화가 정답이죠. 특히 시장성 면에서요. 청도는 경치가 아름다운 연해지역 관광도시고 앞으로도 개발이 더 될거에요.

지하철 개설을 비롯하여 앞으로 몇년간은 또 상당한 발전이 있을 거 같아요.  지하철은 한개 국가를 평가함에 안 빠지는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청도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꿈 실현이 가져다 주는 쾌감 속에 상도 타고 운동도 하며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최철군 씨


◆ 지금 삶에 보람을 느끼시나요?

- 보람을 느낍니다. 저의 꿈이자 가족의 꿈이었던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다는것, 지금은 단순한 음악인보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교육가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많아져서 더욱 보람을 느낌니다.

그 동안 제가 배우고 쌓아온 것들, 중국보다 2~30년 앞선 일본 음악과 교육을 포함하여 다 아이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저의 제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개성있고 꿈이 있는 인재로 성장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만약 학부모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잘 살려주라고 당부 드리고 싶네요.

진로 면에서 아이의 꿈을 우선 존중해 주고 꼭 자기만의 개성과 특기가 있는 아이로 키우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래야 장래성이 있습니다. 아이의 심신 건강에도 물론 좋구요. 미래는 개성 시대라고 봅니다.

앞으로 사업계획은 많지만 긴 말은 삼가하겠습니다.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는 이번 설에 산동TV아동채널 음력설야회에서 저희 소바흐예술학교 학생 밴드팀이 무대에 오릅니다. 독자분들께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花开青岛 2018山东省少儿春节联欢晚会' 大年初一 山东少儿频道 黄金时间段 20:30 播出)



△ 2월 16일 저녁 산동TV 아동음력설야회 무대에 서게 되는 소바흐예술학교 학생 밴드팀


◆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인생 명언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 "기회는 영원히 준비된 자의 것이다."
(人生名言:机会永远是留给有准备的人.)

제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입니다. 오늘 즐거운 인터뷰를 선물해 주신 기자님께 진심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시간/ 2018년 1원 23일
장소/ 청도시 신도심의 한 뮤직프로덕션
인터뷰/ 이만리 기자
촬영/이만리 기자, 일부 사진 최철군 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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