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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ㆍ탐방ㆍ칼럼
[인터뷰] 최림 회장 "양심적으로 봉사하여 체계적인 발전 기반을 다지고 싶었습니다"
기사 작성일 : 17-12-25 10:44 조회 : 3812  


"양심적으로 봉사하여 체계적인 발전 기반을 다지고 싶었습니다"

월드옥타 청도지회 최림 회장 인터뷰


△ 지난 12월 14일 월드옥타 청도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림 회장


최림회장 프로필
▶ 1962년 길림성 화룡시 출생
▶ 연변재무학교, 중앙당교 통신학부 경제관리전업, 호주 시드니 상업학원 졸업
▶ 연변대외무역회사 부총경리 역임
▶ 2002년 중한합자 아미화장품(유방시) 총경리
▶ 2008년 청도리채화장품회사 동사장
▶ 2015년~2017년 월드옥타 청도지회 회장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월드옥타 청도지회 회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계심에도 티 안내고 조용히 할 일만 하셔서 여러가지로 너무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 고향에 계실 땐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경제분야였습니다. 졸업한 학교가 연변재무학교이었어요.


사실 제가 좋아한 건 문학쪽이었는데 어찌하다보니까경제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네요.


어렸을 때 책 보기 좋아하고 특히 소설책을 좋아했어요. 유명한 작가들을 숭배했고요.


그러다 80 년대 초 대학시험을 쳤는데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중등전문학교인 연변재무학교에 입학하여 회계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만약 성적이 좋았다면 좋은 대학에들어가서 문학을 전공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재무학교에서 학생회 단위서기로 활약하기도 했구요. 공부 성적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학교의 배려로 졸업 분배를 잘 받았어요.


졸업 후 연변대외무역계통에서 15 년동안 근무했어요.


주로 회계업무를 했고요. 회계 과장, 차장, 총회계사등 승진도 순리롭게 잘 되어 나중엔 부총경리까지 하게 되었어요.


■ 청도에는 언제 오셨나요?


99 년도에 개혁개방의 흐름을 타고 청도로 왔어요.


청도에 와서 여러가지 일을 해보았는데 적성에 안 맞아 다시 또 원래의 전공을 살려 회계업무를 하게 되었어요.


산동성 청주에 있는 한 한국기업에서 회계 장부를 두달만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해줬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어요. 회사측에서 회사에 남아 회사 관리를맡아 달라는 부탁을 해와서 결국 남게 되었어요.


2007 년도 쯤에 한국경제가 한창 어려울 때 한국임원들이 철수하면서 회사를 물려 받을 의향이 있냐고 해서 과감히 인수했어요.


모아두었던 돈을 투자하여 독자기업을 합자기업으로바꾸었어요.


헤어제품을 생산하는 화장품 회사인데 제가 중국측투자자로 회사 총경리를 맡고 회사 경영관리를 책임졌지요.


■ 옥타에는 언제 회원가입을 하셨나요?


청주 화장품회사를 인수하고 난 후인 2009 년에 청도옥타에 가입했어요. 남용해 초대 회장님 연임하고 박광수 회장님이 이사장 맡았을 때 박광수 이사장님이 이끌어 주셔서 들어오게 되었는데 참 잘 들어온거 같아요. 처음엔 이사로 시작하여 통상위원장, 수석부회장, 그리고 회장으로 올라왔어요.


파워가 부족한 성격임에도 저를 적극 회장으로 추천해주신 명예회장님들께 너무 감사하고 또한 단체장으로써 기대에 못 미친거 같아 한편 죄송스럽기도 하네요.


제가 6 대인데 1~5 대 회장들께서 참 잘하신거 같아요. 선대 회장들께서 청도지회를 아주 우수한 지회로 만들어 놓으셨어요.


저도 나름 2 년동안 열심히 했지만 6 대에 들어와서초반보다 회원 혜택이 많이 줄었어요. 예를 들어 전엔 회원들에게 f4 비자를 해줬는데 6 대에 와서 그 혜택이 없어졌고 또한 청도 지역에 여러가지 우리민족단체들이 많이 생기면서 회원도 어느 정도 줄었어요. 그리고 자발적인 민간단체인 만큼 본부의 경제적인 지원이 없이 자체 회비로 운영된다는 점도 단체장으로서는 항상 명기해야 되고요.



△ 새로 수정한 선거법에 의해 선출된 청도옥타 7대 장성혁 회장(왼쪽)



■ 재임기간 스스로 잘했다고 판단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나름 노력을 많이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바로 단체 운영 구조 조정이에요.


옥타 본부의 취지가 첫째, 한국 중소기업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거나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을 돕기. 둘째,해외에 거주하는 교포 3 세대 즉 차세대를 경제리더로양성하기에요.


1 년에 두번씩 본부 행사에 참여하면서 본부 지시대로 차세대 통합무역스쿨, 중국 각 지회 간 경제협력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어요.


단체가 건전하게 장수하려면 자발적 민간단체인 경우 특히 단체 운영에 있어 회장의 책임, 회장단의 역할,이사단의 역할 등을 확실하게 구분하여 규정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도옥타가 바로 이걸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판단했구요.


우선 정관을 수정했어요.


설립되어 10 년을 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성숙되고 규범화된 지회로 탈바꿈 할 과제를 6 대에서 스스로 중점 과제로 생각하고 몇차례 이사회 토의를 거쳐 본부 정관에 최대한 근접한 정관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물론 청도지회는 다른 지회에서 다 정관이 없을 때 벌써 있었고 좋은 정관이였어요. 궤도에 빨리 들어섰지요.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시대도 많이 변했기에 수정이 필요했어요.


위로는 회장으로부터 아래로는 회원에 이르기까지 협회 내 모든 재무지출과 활동 행사는 미리 연초에 계획서를 이사회에 제출하여 이사회 심의 통과를 거쳐야만 실행할 수 있도록 하였고


연말엔 이 모든 진행 과정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많지 않지만 현재 가진 협회 재산에 대해서도 감사를 진행하도록 했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조정이라면, 6 대에서 처음으로 회장선거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전엔 명예회장단 추천으로 차기회장을 선발했는데 이 방식을 바꿔 명예회장님들과 이사님들  공동추천으로 후선인 선발 후선인이 선거공약을 제출하고 이사단에서 최종 투표한 후 그결과를 따르는 걸로 수정했습니다.


요즘 민간단체들을 보면 회장의 파워로 밀고 나가는데 저희는 회장이 인솔하는 회장단이 공동운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많이 잡고, 이사장이 인솔하는 이사단에서 감독하고 서로 지원하고, 감사 제도를 세워 감사 2 명이 회장과 회장단의 모든 행위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어요.


제도적이고 규범적인 운영시스템을 만든 셈이지요.


이렇게 정관을 많이 수정했습니다.


수정 후의 정관은 결과적으로 7~8 대에 가면서 검증을 받아야 되겠지만, 저는 개인적인 명예보다 내실을 다지는 단체장이 저의 적성에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적으로 봉사하여 청도옥타의 체계적인 발전의 기반을 다지고 싶었습니다.


단체란 회장이 봉사하고 성심성의껏 회원들과 윈윈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2 년동안 눈에 보이는 실적을 올려 명예를 득할 수도 있지만 저의 바램은 누가 회장이 되든 잘 돌아가는 체계화의 기틀을 마련해 보는 것입니다.


혹자는 시기상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사단을 믿습니다. 대부분 CEO 로써 성공한 분들이고, 앞으로 민주선거를 해도 꼭 청도옥타 발전에 유리한 분을 선거하리라 믿습니다.


회장 선거 얘기나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자리란 원하는 사람에게 내줘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의욕이 있어야 일도 잘합니다. 의욕에 넘쳐 공략을 세워 선거경쟁에 나서는 경우는 더 바람직 하지요. 이런 경우 보통 파워있고 창의적인 리더가 나오지요. 덕망과 희생 정신을 갖추어야하는건 물론이구요.


그 어떤 특수사정에 의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자리가 돌아가는 건 선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때문에 훌륭한 리더가 나올 수 있는 제도적인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관 수정이 잘한 일이길 바라구요.


재임기간 활약적이지 못하고 재미없는 회장이었다면 널리 양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구요. (웃음)


앞으로는 청도옥타의 일반 회원으로 돌아가 2 년사이 못한 것들을 뒤에서 힘껏 밀어주겠습니다.

△ 지난 12월 14일 월드옥타 청도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림 회장



■ 개인적인 취미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


취미생활이라고 특별한게 없고요. 조용할 때면 혼자 여러가지 생각을 굴리기 좋아합니다.


내게 감히 그럴 자격이 있나 싶지만 어른이 된 자녀를 둔 입장에서 조선족 3~4 대의 민족성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본다면 우린 반도에서 동북으로, 동북에서 산동및발달한내륙도시로으로 대이동을 했고, 다시 동북이나 산동및타지역에서 반도로 역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애도 한국에 유학 갔는데 연길에서 살었던 경력에 비추어 만약 자녀들이 한국에서 살겠다면 반대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중국에서 살아도 어차피 소수민족이기에 정치문화면에서 한족과 완전 동등한 대우를 받기는 어려우니까요. 연길에서 살 때 많이 느꼈어요. 청도로 이동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평소 책도 이런 쪽으로 많이 봅니다.


청도 조선족 발자취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해보고 싶고요, 팀웍으로 해야 하는 일인지라 누가 만약 한다면 도와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92 년 수교 이후 청도진출 조선족의 발자취를 일일이 찾아서 정리한다는 건 대공정이지요. 이런 일은 우리 세대가 해야지 아래세대가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30~40년 후면 또 한세대가 바뀌지요.


우리민족 역사의 일부분인데 추억으로밖에 못 남는다면 너무 아쉬울거 같습니다.


■ 위에서 본인 스스로 파워가 부족한 성격이라고 하셨는데 본인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낭만을 잘 모르고 재미없는 성격입니다.(웃음)


술 한잔 들어가면 활발하고 재미있어 지긴 합니다.


하지만 건강때문에 술 끊은 지 오래 돼서 그나마 재미있는 면을 보여 줄 기회마저 사라져 버렸네요. 술을 끊음으로 건강상태는 좋아졌으나 사는 재미는 줄어든거 같습니다.(웃음)


우리 세대 문화가 이상한 거지요. 술 한잔 들어가야 말도 하고 웃기도 하니 그 얼마나 잘못된 문화입니까. 단체장이라면 술도 잘 하고 활발하고 사교적이면 좋지요.


■ 좋아하는 인생격언 같은 것이 있나요?


있습니다.


"吃得苦中苦,方为人上人." 고생을 참고 견딜줄 알아야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다는 뜻인데요.


젊었을 때 북경에 출장 갔다가 산 기념품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돌을 깎아 만든 기념품인데 글귀가 너무 맘에 들어 줄곧 갖고 다니다가 소중한 가족에게 선물했습니다.


힘들 때면 늘 이 말을 되새기며 스스로 격려했습니다.


■ 좋은 말씀 많이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이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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