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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ㆍ탐방ㆍ칼럼
[인터뷰] "안타까운 부분이 제일 많았습니다..." 방상명 회장 인터뷰
기사 작성일 : 17-12-25 09:03 조회 : 3813  


"안타까운 부분이 제일 많았습니다..."

재중국한국공예품협회 방상명 회장 인터뷰


인터뷰 시간: 2017년 11월 24일
장소: 재중한국공예품협회 사무실


△ 지난 11월 24일 재중국한국공예품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방상명 회장


■  방상명 회장 프로필
▶ 전라남도 고흥 출신
▶ 청도생활 21년
▶ ㈜하이주얼 대표
▶ 재중국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산동성대한국추협회 9~10대 회장, 청도한인회 성양구ㆍ즉묵시 지회장, 창농CEO총동문회장, 민주평통자문회의칭다오협의회 자문위원, 청도호남향우회에서 활동.
▶ 현 재중국한국공예품협회 회장 연임 중


■  2년 공예품협회 회장직을 맡은 소감은 어떠하십니까?


공예품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소감이라면 우선 안타까운 부분이 제일 많았던거 같습니다.


공예품 업체들은 95년도부터 청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이 곳 청양 지역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공예품 산업은 많은 바이어들로부터 오더를 수주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기업들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시장에서 청도는 쥬얼리 생산의 메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시절 모든 공예품 업체들은 이 지역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1998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이 공예산업의 호황기었던거 같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2010년 이후 서서히 중국 경제 성장과 더불어 이 지역 사회 역시 인건비 상승이 수출원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결과적으로 오더수주가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중국 저쟝성 이우를 포함한 동남아로 오더가 분산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회장을 맡았던 2년은 공예품 산업이 침체되었던 시기로 결코 좋은 기억보다는 안타깝고 불안한 생각들을 많이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협회 전직회장단, 자문위원단을 포함한 여러 임원들과 협회 회원사들의 많은 지원과 관심에 언제나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려워진 현실에 회원사들에게 진심으로 많은 지원과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입장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위에서도 안타깝다고 말씀드렸지만 안타까운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솔직한 저의 마음입니다.


■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책임감이 강하다, 일 처리가 정확하다, 성품이 좋다 등등 평판이 좋던데 본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시 밥을 많이 사줘서 좋다고 하진 않던가요? (웃음)


96년도에 청도에 진출하여 21년이 넘었어요. 늘 가족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을 떠나서 타국에 와서 가장으로서 다 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


언제나 혼잣말처럼 "내가 남들보다 잘 나고 똑똑하고 능력 있었으면 가족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었을 것인데 ………"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여러 친구들과 지인들과 여러 단체들과 같이 해왔던 시간들이 나에겐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역지사지로 내 입장도 중요하지만 상대방 입장을 더 깊히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직원들 입장에서 사장을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생각도 많이 하고 사회 생활하면서 여러사람 접하면서 먼저 남의 말을 들어주는 부분이 있어요.


사소한 일이 내 인생에 큰 걸림돌이 안 되는 이상 양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격이 약하지는 않아요. 강한면도 있어요.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끝까지 생각을 굽히지 않습니다.


성격면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난 11월 24일 재중국한국공예품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방상명 회장



■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나요?


시골에서 농사 지으셨고 동네사람들한테 평생 욕 한번 안 듣고 사셨던 착한 분들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41세에 낳으셨어요. 5남 2녀 중 제가 막내였는데 자식을 7명이나 키우시면서도 욕 한번 안 하고 야단 한번 치신 적 없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다음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화 낼 수도 있었을텐데 왜 혼자 다 담고 가셨나 싶었습니다.


좋은 성격을 물려 주신거 같아요. (웃음)


친화력과 소통하는 자세는 부모님께서 주신 큰 선물인거 같습니다.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단체장으로써 성취감을 많이 느끼는 경우는요?


협회 책임을 맡은 동안 회원사에서 민원이나 사건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생겨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해외에 나와서 사업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타의에 의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 자기 잘못으로 생길 수도 있어요.


회원사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협회가 나서서 도움을 줍니다. 회원들한테서 혼자보다 그래도 협회가 있어서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 제일 기분 좋고 성취감을 느낍니다.


또한 2005년부터 시작한 공예품협회에 처음부터 같이 한 역대회장님들께서 협회 일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 주셔서 감사하고


저희 협회는 비영리단체인 만큼 행사 한번 하더라도 다 비용이 적지 않게 필요합니다. 회장이 할 수 있는 부분 외 십시일반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회원사들에서 적극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사가 협회에 도움을 많이 주는 만큼 저희 협회에서는 회원사들께 해 줄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언제나 안타깝고 미안한 생각입니다.


언제나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출업체 오더 부분은 마음뿐이지 여러가지로 어쩔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 가장 많이 칭찬 받는 부분은요?


공예품협회 단체톡방이 운영되고 있으며 회원이 한 170명 정도 되구요. 기술적인 부분들을 이 방에 올려 자문을 구하면 여러 회원사들이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는 형식으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예인들에게 항상 열려있는 방입니다.


공예인교실을 열어서 공예품 품질관리, 생산관리, 등등 쥬얼리 생산에 필요한 여러가지 지식들을 재능기부 형태로 운영하였습니다.


위 두 가지가 제가 한 일 중에 가장 칭찬 받는 부분이고요. (웃음) 앞으로 보다 질문 응답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보다 많은 공예인들이 적극 이 방을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동안 여러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지요?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축구단체에서 책임을 많이 맡았어요. 재중국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산동성대한축구협회 9~10대 회장을 했고요.


청도 한인회 성양구,즉묵시 지회장과 창농CEO총동문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민주평통자문회의칭다오협의회 자문위원이며 청도호남향우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를 하다보니 회원들은 단체에 대해 기대를 품고 있는데 단체장으로서 할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을 때 마음이 무겁습니다. 회원들을 실망 시킬까봐 두렵고요.


다른 단체장들의 입장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뭔가 회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을 때 가장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회장님" 하고 불러 주면 너무 감사하고요. 그럴수록 뭔가 더 해주고 싶고요. 정부 지원이라도 받으면 뭔가 더 해줄 수도 있을텐데 모든 행사를 회원들 회비로 지출해야 되니 그 부분에서도 한계가 있습니다.


■  요즘 중국외자기업정책에 대해 서운하신 점은요?


글쎄요, 서운한 점 보다는 가끔씩 정부에서 전화를 걸어와서 지원할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는데 저는 항상 긍정적으로 답변합니다. 사실상 엄청난 혜택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도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협회 입장에서 생각 한다면 준비 할 수 있는 시간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 시간을 줄테니 그 동안 이전 혹은 개선 하라는 통보를 미리 해주면 좋겠습니다.


비자문제도 새로운 법이 적용 될 경우 사전에 미리 공지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총영사관이나 한인회, 공예품협회 등 여러 단체에게 변경된 정부의 정책을 사전 공지를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사전 통보가 없이 유예기간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행명령을 하다 보면 유언비어가 떠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정부의 환경보호 정책 역시 끝난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우리 한국 기업들은 정부시책에 부응하여 어려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협회 자선활동을 적극 이끌고 있는 방상명 회장


■ 공예품협회는 오래된 단체답게 몇 가지 특정 활동을 꾸준히 해 오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거 같습니다.


공예협회장배 골프대회는 그동안 계속 꾸준히 해 오면서 회원사 간의 우의와 정보 교환의 장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구조에도 매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 1만원, 협회에서 1만원 모두 2만원씩 매년 지원하는데요. 막상 병원에 가서 어린이가 저희가 지원하는 지원금으로 수술하여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과 지속적으로 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홍십자를 통한 불우학생 (30명) 돕기와 또 하나는 매년 중국소년소녀가장 (20명) 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고요.


그 밖에도 동왕탄소학교라고 성양구에서 제일 빈곤지역 소학교에 올해부터 공예품협회 8대 임원들이 매년 2만원씩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회장 임기가 끝나더라도 앞으로 꾸준히 협회 장학사업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부산 여행은 잘 하셨나요?


처음으로 부산 거제도에 임원 12명과 함께 워크샵 겸 단합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임원들이 함께 단합하여 꾸준히 일을 잘 해야 협회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임원들에게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갔다 오고 나니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고 주변에서 말을 합니다. (웃음)  


△ 처음으로 임원 12명과 함께 워크샵 겸 단합대회를 부산 거제도에서...



  청도에 오신 지 오래 되셨죠?


청도에 온지 21년에 되었구요.


어느 날 문득 청도에서 생활한 21년을 제 나이에서 뺏더니 제가 36살에 청도에 온 거였어요. 30대 중반이면 인생을 살면서 최고 부담 없이 즐겁게 젊음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나이잖아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고 건강할 때고요.


그런 시절에 청도에 왔으니 그 동안 파란만장한 세월을 책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21년 전 한국은 그 당시 엄청난 발전을 하는 시기였고 중국은 척박한 불모지였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싶습니다. 상이라도 하나 받아야지 않을가요.(웃음)


그 시절 와리에 신호등 몇 개 안 되고, 한식당도 경복궁 하나에 호텔도 경주호텔 하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서 자재가 들어오는데 컨테이너 안에 3개월이 지난 신문을 넣어서 보내왔고 한국과자와 라면이 박스로 들어왔어요.


저녁이 되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시골이라 겨울엔 5시부터 깜깜하고 퇴근해서 6시 되면 집에 나홀로였지요.


칭다오 맥주가 사람 많이 살렸어요. (웃음) 칭다오 맥주 한두병 마시면 졸립고 그러다 잠이 들지요.


다행이 전기 불은 들어왔으니 중국어 회화만 맨날 읽었지요. 기숙사에는 한국TV가 없어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중국어 공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중국어는 많이 배운거 같습니다. 업무 하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중국어 구사를 빨리 했어요.(웃음)


출근하는 시간이 즐겁고 저녁은 두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웃음) 상상을 해보세요. 상상이 갈 겁니다. (웃음)


유팅 공항에서 이륙하는 대한항공만 보면 고향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났어요. 그땐 일년에 한번밖에 집엘 못 갈 때니 대한항공 태극 마크만 보면 눈물이 솟구쳤지요. 그 시절 한국사람들 누구나 다 겪은 일이었죠.


그만큼 중국이 급성장하던 시절이었고요. 한국에서 온 한 학생들을 상대로 대화 할 때면 나는  한국은 경제성장속도가 시속 25키로였다면 중국은 140키로를 달리는거 같다고 했어요.


한국의 변화는 피부로 느껴지지만 중국의 변화는 피부로 느낄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발전 하였습니다.


△ 축구, 배드민턴, 골프, 볼링... 운동으로 건강을 지킨다는 방상명 회장


  취미활동은  주로 운동을 많이 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요즘 많이 하는 운동은 축구, 배드민턴, 골프, 볼링클럽 활동 주로 네가지를 합니다. 일주일에 다섯번 운동해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솔로족일 수록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다 보니 먹는 것도 시원찮고 매일 술을 하다 보니 건강 해치기 쉽상이지요. 운동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같이 운동하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어 정신 건강에 좋고요.  좋은 사람도 만나고 젊은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어 젊게 살 수 있는거 같아요. 20여 년을 그나마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건 꾸준히 해 온 운동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근력이 있어야 병을 이겨낼 수 있어요. 저도 한때 술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았는데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다시 되찾았어요.


  만약 다시 2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하실건가요?


청도는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청도는 많은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땅이었기도 합니다.


내가 만약 청도로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청도에 서 생활하게 된 걸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100%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낸 아픔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원하는걸 해 줄 수 있고 자녀들 교육 역시 잘 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2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가능하다면 36세라는 젊은 나이기 때문에 좀 더 큰 도전을 해보고 싶네요.


  한마디 말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 한다면요?


먼저 년말이라 바쁘실텐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신청도뉴스사에 감사드리구요..


지금까지 제가  이곳 청도에서 여러 재외국민(한국교민)들과 같이 해오면서 즐거웠던 기억과 안타까웠던 기억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안타까운 기억들중 이 지역의 의료시설 및 의료진의 대처가 미흡하여 안타까운 생을 마무리했던 주변 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이곳 청도에서 다시는 없길 바라면서 언제나 건강하고 사업이 번창하여 성공과 행복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 지난 11월 24일 재중국한국공예품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방상명 회장


■  감사합니다.


/이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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